Untitled Document
희망의책대전본부로고
희망의책소개 이달의책 우리대전같은책읽기 참여마당
 
참여마당메뉴시작
공지사항
묻고답하기
자료실
자유게시판
 
 
자료실시작
 
 
작성일 : 16-09-13 16:42
[공지] 2016. 독서기행 참여 안내드립니다
 글쓴이 : 희망의책
조회 : 707  
독서기행  ‘기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

  • 기행지: 광주 양림동역사문화마을등 / 기행일 : 10월 21일(금)
   
    참가비: 1만원 ( *입금계좌는 신청접수되면 안내드립니다 )

  *참가방법 : 10월 10일(월)까지 djbook21@hanmail.net 으로 「소년이 온다」 책을  읽고 한 줄 느낌과 함께 성명,주소,
 
    주민번호,이동전화번호를 적어 신청해 보내주시는 분께 선착순기행 참여자격을 드립니다. 접수 후 참가비 입금 완료로 참가

    확정됩니다.

    자세한 일정은 추후 추가 공지드리겠습니다.




    광주 근대문화의 발상지 양림동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대학생기자단 2기 조성우 (광주사진)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이 역사문화마을조성사업에 날개를 달았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 계획에 포함된 문화적 도시환경 조성 방안으로 7대문화권중의 하나인 아시아문화교류권에 선정된 것이다.

 광주천 물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광주의 3대 동산의 하나인 양림동산 자락에 양림동이 자리하고 있다.

양림 이라는 이름은 버드나무 숲으로 덮여있는 마을이라 해서 양촌과 유림을 합해 지어졌다.

 광주근대문화의 발상지라고 불리는 이곳은 많은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많게는 100여년 짧게는 수십 년인 유적지들은 세월이 지나면서부터 무관심속에 온전하게 보전되지 못했다.

점점 황폐해져가는 모습을 보고 10여 년 전부터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어섰다.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프로그램을 만들어 마을을 둘러보며 곳곳의 숨어있는 역사를 찾아 나서고,

  양림동산을 ‘역사의 숲‘으로 이름 붙였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주민들은 양림동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 양림동문화지도다.

30여명이 조를 나눠 직접 걸어 다니며 거리를 측정해 만들었고

  22곳의 유적지를 선정해 표지판도 설치했다.

 
문화지도를 바탕으로 양림동의 근대문화유적들을 만나보자.

 1. 선교기념비

첫 번째 유적은 사직도서관 정문 옆에 위치한 선교기념비다.

1904년 미국 남장로교회 배유지(Eugene Bell) 오원(Owen) 선교사 일행들이

  목포에서 배를 타고 광주천까지 흘러들어와 이곳 양림동에 터를 잡았다.

그 해 12월 25일 오전 11시에 배유지 선교사의 임시사택에서 지역민들과 첫 예배를 기념하여 1982년 건립 됐다.

‘서양촌’이라고 불린 이 지역민들의 호기심에 시작된 예배 참석이 바로 광주 근대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2. 선교사묘역

현재 호남신학대학교가 자리하고 양림동산 일대에는 원래 읍성 밖에 있던 풍장터였다.

선교사들이 정착 한 뒤 나무도 심고 길도 내고 사택, 교회, 학교, 병원을 지어 근대화의 씨를 뿌렸다.

100년이 지난 지금 배유지목사를 비롯한 22명의 선교사들이 묻혀있는 국내 대표적인 선교사묘역의 하나가 되었다.

 3. 우월순 선교사 사택

목사이자 의사였던 우월순(Robert M. Willson) 선교사가 1920년대 무렵 지은 이곳은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네덜란드양식) 건축물로 자리잡고 있다.

1908년 지금의 기독병원인 제중원의 원장을 역임하면서 나환자들을 돌보며 결핵 예방에 힘쓰는 등 의료 선교에 평생을 바쳤다.

특히 나병원을 개원하여 하늘이 내린 벌로 알려져 있던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고

  양림동 뿐만 아니라 전남지역 순회 의료진료를 하는 등 봉사와 희생, 생명 존중의 정신을 일깨웠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전쟁고아들을 수용하는 시설로도 이용했다.

사택 한쪽에는 대나무숲이 우거져 있는데 개경에 화살을 만드는 재료를 보내기도 하고 죽제품으로 유명했음을 의미한다.

4. 호랑가시나무

우월순 선교사 사택 아래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수령이 400년이 넘는 호랑가시나무가 있다.

잎이 두껍고 광택이 있는 가죽질이며 잎가에는 다섯 개의 가시모양 톱니가 있어서 호랑이가 등을 긁었다는 속설도 있다.

기독교에서는 이 호랑가시나무를 신성시 했으며 크리스마스카드에 붙여 장식으로 이용했다고도 한다.

1904년 처음 터를 잡을 때 이 호랑가시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어 그 후로도 선교사들의 보호를 받아왔다.

그 밖에도 이 양림숲에는 은단풍나무, 페칸 같은 다양한 외국수종의 나무들이 많이 있다.

자기 고향의 나무들을 가져와 심어놓고 향수를 달래기도 하고 보릿고개시절 비상식량으로 쓰였다.

 5. 수피아여중고 (벨 메모리얼 홀, 광주3․1만세운동 기념 동상, 수피아홀, 윈스보로우홀)

작년 개교100주년을 맞은 수피아여중고는 1908년 배유지 선교사가 임시사택에서 여학생3명을 가르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2011년 모금활동을 통해 수피아홀이 지어졌고 수피아여학교로 이름도 바뀌었다.

1927년에는 지금의 수피아여중본관으로 사용중인 윈스보로우홀이 건축된다.

별관과 강당건물과 같이 이전의 회색벽돌과 달리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광주 근대건축의 변천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곳은 광주 전남 여성교육의 요람이 되었고

  1919년 3․1독립만세운동 주도로 폐교와 휴교등의 수난을 거치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많은 기여를 했다.

수피아 대강당 앞의 광주3․1만세운동 기념동상은 수피아여중고 동창회 주도로 1995년 건립되었다.

1921년 미국 남장로교 광주선교부에 의해 건축된 커티스 메모리얼 홀은

  1995년 호남선교에 헌신했던 배유지 목사를 기리기 위해 선교사들의 회의를 거쳐 지금의 배유지 기념예배당으로 이름을 고쳤다.
6. 오기원기념각

배유지와 함께 전남 최초의 선교사였던 오기원(Owen)과 그의 할아버지 월리엄을 기념하기 위해 1914년 건립된 서양식 건물이다.

목사이자 의사였던 오기원의 희생적인 삶에 이은 순교는 우리나라 한센병 구제 역사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현재 광주기독병원 간호전문대학에서 강당으로 사용되고 잇는 이곳은 주로 교회로 이용되었으며

  크고 작은 문화행사의 장으로 활용되는 등 문화전당의 역할을 했다.

 7. 양림동의 예술가들  (다형 김현승 시비와 시인의 마을, 정율성 가옥)

양림동은 문학과 예술분야에서 걸출한 인재를 낳았다.

'가을의 기도'라는 시는 고등학교 시절 널리 읽혔던 시다.

김현승 시인은 이곳 양림동에서 태어나 숭일학교를 다니고 양림교회를 다녔다.

시비는 그가 근무하던 조선대학교와 무등산 광주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양림동산 능선에 세워져있다.

또 중국의 3대 음악가로 잘 알려진 정율성 선생은 양림교회, 숭일학교, 선교부,

  외가(최흥종 목사, 최영욱 의사, 김필례 여사 등)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항일운동을 물론 음악공부도 열심히 했다.

 8. 정공엄지려

관직을 베풀면서 선정을 베풀고 부모에게는 효행이 지극했던 정엄을 기기기 위해 세워졌다.

한쪽에는 한양까지 주인 정공의 문서를 심부름하다 죽은 충성스런 개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와

  후대에 이 정려 한 켠에 견석상을 세웠다.

 9. 전통한옥 (이장우 최승효 가옥, 양파정)

이장우 가옥은 1899년 정병호가 건축하였고 1965년 동강학원과 나주 동신대학교의 창립자인 이장우가 사들였다.

전통 한옥의 형태로 대문간, 곶간채, 행랑채, 사랑채, 안채로 이루어져있는데 이중 안채만 시 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있다.

또 이장우 가옥을 건축한 정병호의 부친인 정낙교가 고려말 광주천의 강 가운데 건축되어 홍수를 다스린 석서정을 추억하며

  일제강점기인 1914년 양림산 바위 언덕에 건축한 것이다.

개화기 독립운동가였던 최상현이 지었다가 69년 MBC창립자인 최승효가 이 한옥을 샀다.

이 한옥은 조선전통가옥과는 달리 개화기 한옥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다락을 만들어 독립운동가를 숨겨주고 자금지원은 물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데도 힘썼다.

지금은 최승효의 아들 최인준씨가 관리하고 있다.

10.. 충현원

한국전쟁 고아를 맡아 보호했던 이곳은 현존하는 보육원 중 가장 오래됐다.

여순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당시 여학교 교사 였던 고 박순이 선생은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우월순 선교사 사택에서 고아를 보호하는것을 시초로 1953년 충현 영아원을 설립했다.

당시 관여한 선교사들이 영아들의 건강을 위하여 채광과 통풍 등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던 흔적이 남아있다.

현재는 60 여년 만에 복원이 될 예정이다.

해외입양관련 자료 전시관과 선교사회 복지기념관 등으로 사용 된다.

그 밖에도 광주천,

  사직공원 일대에서 일어났던 3․1만세 운동은 물론 광주학생동립운동 등의 역사적인 장소가 양림동과 어우러져 있다.

 양림동이 고향인 김형연(금동)씨는

  "예전과 달리 정화가 잘 되어있고 공원같은 편의시설이 있어 많이 나아졌다"면서

  "옛날에는 수피아교정이나 호남신학대학 등 사방팔방이 담벽락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또 "광주가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우뚝 서길 바란다"며

  다만 "지산동․지원동 문화지역, 첨단에 고분, 어등산 등 광주에 숨어있는 곳을 구체적으로 활성화 시켰으면 좋겠다"고 했다.

양림동 지역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노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좋은 동네 만들기 운동을 꾸준히 실천하고 학습동아리를 만들어 공부하고 직접 발로 뛰어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자료를 찾았다.

양림동 주민자치위원회 회원이신 오복현씨는

  "우리 동 주민들은 동네를 살리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마을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과시했다.

주민으로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에 대해서는

 "예산지원이 원할 했으면 좋겠고, 사업진행에 있어서 겉돌지 않고 계획성 있게 구체적으로 진행되었으면 좋겠다"고 예기했다.

또 "부산의 용두산 공원, 전주 비빔밥 등 광주만의 특색을 잘 살려 지역경제가 활성화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역사문화마을 양림동이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에서 아시아의 문화와 더불어 성장해 나갈 모습을 기대해 본다.

 
   
 

 
주소와 개인정보보호정책관련 문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