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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도서
철학자와 하녀
출판연도
2014
출판사
메디치미디어
작가
고병권
첨부파일
철학자와하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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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난 속에서도 곁에 있어주는 당신이 있기에 ‘가능성’은 있다 국가나 사회의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가난한 이들은 ‘별수 없이’ 하지만 또한 ‘놀랍게도’ 삶의 공동체를 일구어냈다고 저자는 말한다. 철학은 인간 안에 자기 극복의 가능성이 있다고 가르친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지옥 같은 현장에서도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이 낙원이라면 철학은 존재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저자의 생각을 좇다 보면, 세상을 안정적인 대상으로 놓고 개인의 처세만 강조하는 철학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인문학자 고병권에게 있어서 철학은 ‘박식함’이 아니라 ‘깨달음’이다. 힘들고 힘든 시절, 적잖은 사람들이 ‘이젠 지쳤다’며 운명의 줄을 놓아버린다. 저자는 뭔가 줄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했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가 가진 원초적 선물이 필요했다. 곁에 있어주는 것이다. 철학은 거창한 게 아니다. ‘초조함이 죄악’이라고 말한 카프카의 말뜻처럼, 곧바로 반응하지 않고 주변과 옆 사람을 충분히 살펴보자는 것이다. 영리한 노예, 성공한 노예가 되지 않는 길-철학에서 만난다 이 책은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면서 세상을 바꿀 힘은 없다고 느끼는, 무력감에 빠진 마이너리티들에게 ‘철학’이란 도구를 안겨준다. 가난한 사람과 철학자는 서로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가 안양 교도소에서 철학을 강의하게 됐을 때, 한 재소자는 “왜 우리가 지금 여기서 철학을 공부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때 저자는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를 조롱했던 트라케의 하녀를 떠올렸다. 탈레스는 땅만 보는(현실 문제만 잘 해결하는) 하녀를 무시했고, 하녀는 하늘만 보는(현실에서 동떨어진) 탈레스를 조롱했다. 그러나 둘 다 옳지 않다. 탈레스는 하녀에게 의미 있는 학문을 해야 한다. 하녀도 눈을 들어 밤하늘의 별을 바라봐야 한다. 다른 세상을 인식하게 되면, 그간 물질과 권력에 순종했던 태도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불가능과 무능력, 궁핍과 빈곤을 양산하고 규정하는 모든 조건에 맞서 분투할 수 힘이 자라난다. 니체는 “철학은 자발적으로, 얼음이 덮인 높은 산정에서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많은 학자들이 품고 있는 도피 욕망, 즉 번잡한 현실을 피해 조용히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뒤엎는다. 사람의 길을 제시하는 인문학이라면, 지옥 같은 일상에서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참된 철학은 현실이 중단된 곳, 즉 누구도 뛰어들고 싶지 않아 하는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지금의 현실과 다른 현실을 만들어낼 재료가 있기 때문이라고 고병권은 말한다. 그 속에서 철학 하는 사람은 성공에 성마르지 않고, 영리한 지름길이 아닌 우직하지만 에두른 길을 걸어간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느라 앞만 바라보며 사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철학이다. 사회적 약자들, 형제복지원 같은 시설, “지금 여기의 문제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난 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장애인들의 시위 현장에서, 성매매 여성의 쉼터에서 철학을 강연했다. 파업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해석 노동’의 문제를 생각하는 등 고병권은 현장에서 철학의 ‘소재’들을 만났고, 그로 인해 그의 철학에 의미가 더해졌다. 더 나아가 저자는 ‘5장 우리는 자본주의 수용소에 살고 있다’에서 형제복지원 등의 시설 문제를 제기한다. 이미 형제복지원 문제는 표면화되었다. 많은 이들이 이 시설 내에서 벌어진 인간 이하의 행동들에 격분했고, 이런 일들이 버젓이 행해졌다는 데 경악했다. 그런데 저자는 ‘시설’을 민주화 과정에서 벗어난 예외 공간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사회적 약자 등의 문제를 ‘여기’의 문제가 아니라 ‘거기’의 문제로 보는 시각은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누군가를 어떤 식으로든 격리하고 별도로 관리 통제해야 하는 사회는, 미셸 푸코가 말한 시설 사회이다. 그런 시설을 통하지 않고서는 ‘함께’ 사는 방법이 마련되지 않은 사회이다. 시설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시설과 수용소에 더 많은 사람을 가둘수록 민간 운영주체는 돈을 벌어들인다. 거기서 가장 추악한 자본주의의 민낯이 드러난다. 철학 공부를 위한 준비란 필요하지 않다 위대한 철학자인 데카르트와 스피노자가 서로 이견을 보인 지점이 있다. 데카르트는 진리탐구를 하기 전에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했지만, 스피노자는 그런 식이면 무엇을 알기 위한 방법, 또 그 방법을 위한 방법 등 계속 준비만 하다가 끝나버린다고 반박했다. 저자는 스피노자에게 동의한다. 앎을 생산하기 위한 선행조건 같은 것은 없다. 수영법을 배우기 전에 물에 들어가 조잡하게라도 수영을 시작한 뒤에 우리는 수영법을 알게 된다. 가진 것이 자갈과 나뭇가지뿐이어서 아직 공부를, 철학 공부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것은 공부를 늦추는 핑계일 수는 있어도 공부에 대한 참다운 인식은 아니다. 공부란, 어떤 방법을 알아내서 단번에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철학에 대해서 막연하게 두려움을 가진 이들에게 힘이 되는 말이다.